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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늘 없는 낚시
생자리
올림낚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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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,431
2006-12-16 18:06
과거우리 조상님들도 미늘 없는 낚시 바늘을 사용하셨나 봅니다.
<옛시조> 낚싯대에 미늘 없는 낚시를 매어
아이야, 도롱이와 삿갓을 차려 내오너라.
동쪽 계곡에 해 지겠구나.
기나긴 낚싯대에 미늘 없는 낚시를 매어
저 고기야, 놀라지 말아라.
내 너를 잡으려는 게 아니고 흥취 삼아 하는 것이니라.
조존성 [趙存性, 1554~1628] 조선 중기의 문신.
본관 양주(楊州). 자 수초(守初). 호 정곡(鼎谷) ·용호(龍湖). 시호 소민(昭敏).
1590년(선조 23) 진사로 증광문과(增廣文科)에 병과로 급제한 후
검열(檢閱)이 되고, 대교(待敎)에 올랐다가 정철(鄭澈)의 일당이라 하여 파면되었다.
1593년 의주에 가서 대교에 복직, 그 뒤 명나라에 가서 상서(尙書) 석성(石星)에게
명군철병론을 철회하게 한 공으로 직강(直講)이 되었다.
1595년 해운판관(海運判官) 때 군량운반에 공을 세웠으며,
1613년(광해군 5) 생모추존(生母追尊)에 반대하여 파직되었다.
1623년 인조반정 후에 형조와 호조의 참판 ·부총관(副摠管) 등을 지내고,
이듬해 이괄의 난 때 검찰사(檢察使)로 왕을 공주(公州)에 호종하고, 난이 진압된 뒤
중추부지사 겸 의금부지사 가 되어 기로소(耆老所)에 들어갔다.
1627년 정묘호란때 분조(分朝)의 호조판서로 세자를 따라 전주에 갔다가
돌아와 병사했다. 《해동가요(海東歌謠)》에 시조 4수가 전한다.
출처: 개여울. 옛 견지낚시 자료실
옛날엔~
걍옆에있어도 귀한줄모르고 댕겼습니다
( 생자리님께 개인적으로 드리는 말씀 - 될 수 있으면 아르켜 주지 마세요.다 그렇지 않지만 만일 알려지는 날엔 고기 씨가 마를 것입니다. 우려인가요 ? )
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.
지금도 저희 처가쪽 농수로에는 붕어(5-9치), 잉어, 가물치가 물반 고기반 입니다. 슬러퍼 끌고 낚싯대 1대만 가지고 1시간만 잡으면 한양동이 입니다
옛날에는 괴기도 많앗겟지 하고 생각이 드는건 외일까요 ㅋ
욕심인가;;;
지렁이 낚시는 글쎄요.
떡밥엔 무난할듯요